2012. 5. 1.
냄새
난 '이' 냄새에 약했다.
개인 스케줄이 없는 이상 1년 365일. 거의 24시간동안 하루 종일 붙어있는 우리 멤버들. 그 속에서도 '두준'이는 나에게 특별하게 존재했다. 그 이유는 항상 두준이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체향(體香)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냄새로써 두준이가 특별하게 다가온건 두준이를 처음 만나고 얼마 안가 바로 알아차린 후였다. 우린 첫 만남부터 같은 그룹에 소속될 운명였고 숙소에서는 한 방을 쓰면서 하루에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습하는데 투자해야했으니까.
'그' 좋은 냄새는 항상 나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데뷔 날짜를 코앞에 두고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기에 더 궁금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촉박하게 정해진 일자에 우린 꾸미기는 커녕 온전히 숙소-연습실-숙소만 찍고 다녔다. 밥을 먹을 때도 춤을 출 때도 노래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잘 때도. 대체 뭘 바르고 뿌렸기에 하루종일 좋은 냄새를 달고 사는걸까 싶었다. 하지만 그 때의 두준이와 나, 우리 사이에는 같이 데뷔할 그룹의 멤버이자 동갑내기 친구. 그 이상 특출 날게 없는 사이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가 이런걸 물어보기엔 좀 어색한 사이가 아닐까하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것을 직접 물어볼 필요까지는 없었다. 숙소에 가서 두준이 무슨 화장품을 쓰는지 혹은 무슨 향수를 쓰는지 잠깐만 곁에서 살펴보면 될 일이었다.
여섯 명 각자가 쓰는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이 뒤섞여있는 화장대. 그 가운데 두준이 바르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두준이 바라보는 거울 속, 구석 쪽에 내가 존재하게끔 눈에 띄지 않게 바라보았다. 두준의 얼굴과 화장대에 홀로 떨어져있는 화장품을 번갈아보는 와중에 거울 속 두준과 눈을 마주쳤지만 자기 할 일에 정신없던 두준이는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충 발랐다고 생각드는지 두준은 얼굴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선 방을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난 미리 스캔해놓은 두준의 것의 좌표를 따라 하나씩 화장품을 손에 쥐었다. 골라놓은 세 개의 화장품을 아까 두준이 얼굴에 발랐던 순서대로 나란히 놓았다. 정답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차례로 화장품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주입구에 코를 한참을 대고 개처럼 킁킁 거려봤지만 딱히 두준이의 그 '특별함'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혹시 살에다 바르면 좀 다를까? 가볍게 손바닥에 덜은 후 손등에도 바르고 팔뚝에도 바르고 두준이처럼 얼굴에도 발라보았지만 벌거 없었다. 그렇다면 혹시 샤워젤? 바디로션? 아니면 샴푸 냄새인가? 화장품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은 후 화장실 구석구석을 뒤져봤지만 내가 아는 데로 화장실 욕조 구석에 자리한 것은 멤버들이 공용으로 쓰는 제품들, 딱 한가지씩 뿐이었다.
아아, 현기증이 난다. 불이 꺼진 방 안에는 온통 두준이의 냄새로만 가득하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지만 두준이가 먼저 '현승아 자?' 하는 물음에 말꼬가 터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두준과 나란히 누워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별로 재미없는 얘기도 재미있게 들렸다. 이미 모든 정신은 두준이에게 향해있다. 두준이가 가지고 있는 냄새로. 두준이와 같은 방을 쓰게 되면서 항상 이런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며 좋은 냄새와 함께 잠에 들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냄새에 민감했을까.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다. 남들 다 쓰는 향수도 잘 안쓰는게 나였다. 대만 프로모션 이후에 대표님께서 선물해주신(거지만 사실 여기저기 지방시 play의 광고가 많이 보여서 고른게 맞는) 향수는 마음에는 들었지만 원체 향수에는 관심이 없다보니 play 이 후로 별다른 향수를 쓰진 않았다. 선물을 받아도 가끔씩 써보는 그 뿐 이었다. 난데없는 이상한 집착이었다.
정말 다행인건 우린 서로의 스킨쉽에 많이 익숙한 상태였다. 적어도 내가 아니라도 두준이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서로의 스킨쉽에 익숙하다는건 내가 노력을 한다는 전제하에 이뤄질 수 있는 명제였다. 난 스킨쉽을 두준이와 내가 가지는 관계의 척도로 판가름했다. 데뷔 초 서먹했던 사이가 지금은 많이 누그러지고 모든게 자연스러웠다고 느껴졌다는게 모두 스킨쉽으로 느끼는거였다. 두준이가 내게 스킨쉽을 하면 난 냄새에 못이겨 긴장이 풀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얼굴이 무너져내릴까 혹은 무심결에 봐버렸을까 혼자 속으로 전전긍긍했다. 날 이상하게 보는게 싫었다.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느껴졌다. 두준이 잠 들었을 때 내는 특유의 숨 고르기를 듣고 알아차렸다. 가만히 몸을 두준이 쪽으로 바짝 붙였다. 워낙 잠버릇이 심한 나니까 === 고개를 숙이고 두준이의 목 곁으로 좀 더 다가가 들키지 않는 하에 깊게 숨을 쉬었다. 누구에게도 맡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두준이만의 체향이 내 폐부 로 들어온다. 나른함을 동반하는 이 기분은 몸 속 깊숙이 반응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의 근육이 완전히 풀어져버렸다.
숙소 있을 때는 그렇게 잠이 안오던게 해외 공연 나갈 때 두준이 너랑 같은 방만 쓰면 항상 잠이 잘 왔어.
그랬었어?
두준이와 룸메가 되고서 첫날밤. 나의 고백과도 같은 말을 두준은 칭찬으로 받아드렸는지 웃으면서 마주보고 있던 내 정수리 머리카락을 강아지처럼 살살 긁어주었다. 이미 풀어진 몸에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꿈속으로 가버릴 것 같은 기분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애들은 너한테 좋은 냄새가 나는걸 모를까?
글쎄, 너처럼 한 번도 그런 좋은 소리는 안 해주던데-
애들이 둔한건지 내가 유난인건지. 중요한건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질 법한 이 냄새를 아직도 민감하게 받아드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이 목이 마르면 수분을 요하고 잠이 오면 수면을 취하듯이 나는 두준이가 고파졌고 냄새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를 살아가는데 있어 매일 매일 두준이 필요해진 셈이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지만 두준이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나쁘기보단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그로 인한 파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준이를 보면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 나와 멤버들은 매니저 형에게 숙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숙소도 넓고 개인 스케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더 이상 6인 1실은 무리가 따르지 않느냐는 말에 우리는 동의를 했고 그렇게 결정된 것이 2인 1실 체제였다. 매니저 형이 당장 누구와 방을 쓸 거냐며 다짜고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두준이와 룸메가 되길 간절했고 결국에 난 그것을 얻게 되었다.
근데 너도 좋은 냄새가 나.
응? 나?
내가 두준이에게 오늘 처음 이 말을 꺼낸 것처럼 나 역시도 이런 말은 처음 들었다. 나한테 무슨 냄새가 난다는 소릴까. 내게서 냄새가 난다면 그 냄새는 어떤 향을 가졌다는 의미일까. 내가 느끼는 것처럼 두준이와 같은 좋은 느낌의 냄새일까. 나는 팔을 번쩍 들어서 손이고 손목이고 팔뚝이고 내 구석구석을 킁킁 거렸다. 물론 겨드랑이는 아니겠고. 한참동안 살에 코를 비벼봤지만 나는 냄새라곤 무향 그 자체였다. 진짜 나는거 맞아?
안 나는데…….
난다니까
두준이 말에 나는 다시 냄새를 맡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려 팔을 향해 코를 문대고 비비고 개처럼 킁킁거려도 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별 다른 냄새는 안났다. 내가 두준이한테 냄새 타령만 하니까 얘가 날 갖고 노나 싶어서, 혹운 진지하게 꺼낸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린 걸까 두준의 눈치를 살폈더니 역시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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